평균 95점으로 국가자격시험에서 무난히 합격권에 있던 수험생이 최근 합격자 발표에서 떨어지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2021년 11월 치러진 제23회 경비지도사 국가자격시험에서 생긴 일입니다. 최근 3년간 경비지도사 자격시험의 평균 최저 합격점은 94.58점입니다. 평균 95점이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던 점수죠. 그런데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어처구니없는 사정. 어떤 이유 때문인지 잡스엔이 알아봤습니다.
조선DB, 게티이미지 뱅크
이번 경비지도사 2차 필기시험에서선 5년 전 폐지된 대통령 훈령인 ‘국가대테러활동지침’에 근거한 문제가 출제돼 이의제기가 있었습니다. 관련 문제는 총 80개 문항 중 2개 문항(경호학 77번·80번)이나 됩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이의제기를 받아들여 출제 오류를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전원 정답처리를 했습니다. 한 문제당 2.5점인 시험에 두 문제를 전원 정답 처리하면서 합격선은 평년보다 훨씬 높은 96.25점으로 올랐습니다. 역대 최고점입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애초 불합격이었던 수험생이 합격하고, 합격권에 있었던 수험생이 불합격하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죠.
2차 시험은 상대평가입니다. 전원 정답처리로 논란이 있던 77번과 80번 문제를 맞춘 일부 수험생(조정 전 95점)은 불합격하고, 문제를 틀린 일부 수험생(조정 전 93.75점)이 합격했습니다. 5문제를 틀렸던 수험생(77번·80번 오답자)이 3문제를 틀린 것으로 조정되면서 4문제를 틀렸던 수험생(77번·80번 정답자)이 합격선 밖으로 밀렸다는 주장도 나왔죠.
경호학이 아닌 다른 과목을 선택한 수험생 사이의 형평성도 문제도 제기됩니다. 일반 경비지도사 자격시험에서 경호학은 선택과목입니다. 2차 필기시험에서 경비업법은 필수 과목이고 나머지 소방학, 범죄학, 경호학 중 한 과목을 선택해 시험을 보는 것이죠. 경호학 외에 다른 과목을 택한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경호학 수험생들은 기본으로 5점을 갖고 가는데, 더 유리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오류 문제를 전원 정답 처리하면서 원래는 합격권에 있다가 탈락한 수험생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은퇴를 준비하면서 2년을 공부했다는 한 중년의 수험생은 “한 문제 차이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게 국가시험인데, 이번에 한 문제도 아니고 두 문제나 전원 정답 처리하면서 합격권에서 밀렸다”며 “억울하게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경비지도사 자격 시험은 1년에 한 번 치러집니다. 이에 많은 수험생들이 철저히 준비해서 자격시험에 응시하는데, 이번 사태 때문에 합격권에서 밀린 수험생들은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이죠.
한국산업인력공단은 해명이나 피해 보상 관련해 묵묵부답입니다. 이에 수험생들은 단체로 행정심판 청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표 소송인 박동민 씨는 한 언론매체와 인터뷰하며 “출제 오류가 아니었다면 실력으로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던 수험생이 탈락한 결과는 불공정하다”며 “귀책 사유가 출제 기관 측에 있는 만큼, 기존 답안으로 선발 인원에 해당하는 합격자를 먼저 선발하고, 오류 문제로 구제될 사람들을 추가 합격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한국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이의신청 절차를 거쳐 최종합격자를 결정한다는 내용을 고지했고, 수험생들이 합격을 놓고 문제를 제기한다면 행정심판 등 구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국가시험 오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21년 7월에 치러진 빅데이터 분석기사 자격시험에서도 오류가 생겨 많은 수험생들이 피해를 보았습니다. 빅데이터 분석기사 실기시험에서 전체 응시생 2000여명 중 120여명이 ‘작업형2’ 영역에서 채점 오류로 0점 처리를 받았습니다.
빅데이터 분석기사 시험은 영역별로 ‘단답형’ 30점, ‘작업형1’ 30점, ‘작업형2’ 40점 등 전체 100점 만점 중 60점 이상을 받아야 합격입니다. 이번 시험 채점 오류로 점수 비율이 가장 높은 영역인 작업형2에서 0점 처리를 받은 120여명 대부분이 불합격 통보를 받은 것이죠. 문제는 채점 기간이 한 달이나 됐는데, 오류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합격자 발표를 한 것입니다.
수험생들이 먼저 나서서 항의하자 시험 주관 기관인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K-DATA)은 그제서야 심각성을 인지했습니다. 당시 수험생들은 네이버 카페, SNS 등을 통해 채점 오류 사례를 수집해 K-DATA에 집단 항의를 했습니다. 이에 재검토 신청을 받았고 오류를 정정할 수 있었습니다.
정정 조치로 전체 응시생 2000여명 가운데 489명이 불합격에서 합격으로 변경됐습니다. 반면 합격에서 불합격으로 번복 처리된 응시생은 19명이었습니다. 이에 많은 응시생이 자격증 취득 결과가 늦어져 그해 하반기 취업 준비에 차질을 빚는 경우도 발생했죠. 또 불합격 처리된 응시생 중 합격 자격증을 인쇄해 제출하는 난처한 상황을 겪은 사례도 발생했습니다.
한 응시생은 “시험을 정말 잘 봤고 답을 옮겨 적을 때도 문제가 없었는데, 0점으로 나와 정보공개포털에 정보 공개를 청구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빅데이터 분석기사 시험은 취업뿐 아니라 기업 인사에서도 가산점을 받을 수 있어 응시했는데 이번 오류로 당장 준비하고 있던 기업에서는 쓸모가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이 사태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은 “취업 준비생에게 자격증 합격, 불합격 여부는 매우 중요한 사안인 만큼 진흥원은 실수라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면 안 된다”며 “철저한 조사와 제도 개선을 통해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고를 계기로 빅데이터 분석기사 자격시험 채점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2021년 12월 치러진 제3회 빅데이터 분석기사 자격검정 실기시험부터는 자동 채점 프로그램과 수기채점을 병행했습니다. 기존 자동 채점 프로그램 방식과 달리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해 두 번에 걸쳐 수기채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은 체점 오류 방지를 위해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 관계자는 “전과 같은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수험생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실기시험 채점방식을 자동채점프로그램과 수기채점을 병행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 오류를 방지하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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