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시험 ‘불공정·특혜’ 예견된 일…출제위원이 문제 내고 스스로 채점까지
-세무사회 ‘세무회계’ 시험, 선정위원이 문제 오류 검토…채점 재검제도 운영
세무사를 비롯한 42개 국가자격시험을 주관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시험 관리와 운영이 민간단체인 한국세무사회의 시험관리 보다 못한 초등학교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특혜 의혹이 제기된 세무사시험 주관을 공정성과 투명성이 담보된 타 기관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8일 국세신문 취재 결과 검토위원 없이 출제되고 출제위원이 채점까지 하는 등의 난맥상를 보이는 산업인력공단과 달리, 민간자격인 한국세무사회의 ‘세무회계’ 시험은 검토(선정)위원을 필수로 운영하고 채점도 재검 제도를 두는 등 규정을 준수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산업인력공단은 비용절감을 이유로 2020년부터 세무사시험 등 모든 국가자격시험의 검토위원을 없앤 채 시험을 관리함으로써 2021년 세무사 2차시험의 ‘불공정·특혜’ 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검토위원(선정위원)은 출제한 문제의 난이도와 오류 등을 잡아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는 세무사시험의 경우 2019년까지는 2명의 검토위원을 두고 운영했으며 1년 예산은 240만원이었다.
하지만 산인공은 240만원을 아끼려 검토위원 없이 지난해 세무사 2차시험을 실시, 세법학 1부 과목에서 응시생 3962명 중 82.1%인 3254명 과락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초래했다.
검토위원이 없는 것도 문제인데 산인공이 주관한 세무사시험에서는 출제위원이 직접 채점에도 참여, 출제·검토·채점을 사실상 동일인들이 수행한 것으로 드러나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 산인공-동일인이 출제·검토·채점까지…초등학교 시험?
“출제위원이 시험 문제를 내고 채점도 하는 것은 초등학교 시험에서나 하는 방식 아닌가요?”
지난해 치러진 세무사시험에서 검토위원 없이 출제위원 스스로 검토하고 심지어 채점까지 참여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현직 세무사가 “황당하다”며 내뱉은 반응이다.
세무사시험 개선연대(세시연) 등에 따르면 실제 지난해 세무사 2차시험에서 문제가 된 세법학1부 3번과 4번 문항의 출제위원 2명은 출제와 검토위원 역할을 겸했으며, 심지어 채점에도 참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과목의 채점을 출제 당사자들이 다른 채점위원 2명과 공동으로 수행했다는 것이다.
공정성과 투명성이 생명인 국가전문자격 시험이 초등학교 시험 관리의 행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시연 관계자는 “재무회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이 세법학 문제를 출제한 것은 규정 위반”이라며 “더구나 문제 오류, 기출문제 유사성 등을 검토하는 위원도 없고 출제자가 채점을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공정한 결과를 기대하겠느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산업인력공단은 국가전문자격 주관식 시험에 별도의 검토위원을 두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TV조선 화면 갈무리.
◆ 세무사회 ‘세무회계 1급’-출제·검토·채점 각 소위원회서 관리
산업인력공단과 달리 민간단체인 한국세무사회가 주관하는 ‘세무회계 1급’ 시험은 민간자격이지만 철저한 관리로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어 세무사시험 수험생들도 실력 검증을 위해 응시하는 과목이다.
시험 관리와 운영 전반을 비공개로 일관하는 산인공과 달리 세무사회는 출제·검토·채점 위원 수와 시험 진행절차 등을 명시한 ‘자격시험 관리 운영규정’을 홈페이지에 게재해 놓고 있다. 누구든 볼 수 있다. 시험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자신감에서다.
‘세무회계 1급’은 세무회계 전반(법인세법, 부가가치세법, 소득세법, 조세특례제한법 등)의 평가를 통해 기획재정부가 공인자격을 주는 시험이다. 한국세무사회가 주관하며 세무사 2차 시험과 같이 주관식으로 출제된다.
세무회계 시험과 함께 전산세무·회계 시험도 주관하는 한국세무사회의 자격시험은 출제와 선정, 채점 단계에서 각각 별도의 소위원회가 구성돼 검증과 채점의 투명성이 담보되는 관리 체계를 작동한다.
이런 철저한 관리 때문에 공인자격으로 승격한 지 14년이 됐고, 매년 30만 명 이상이 응시하고 있지만 문제 유출이나 특혜 의혹 등의 사태는 불거지지 않았다.
출제는 등급별로 4명 이상인 출제소위원회에서 문제를 만들고, 2명 이상으로 구성된 별도의 문제 선정 소위원회(세무사시험의 검토위원)가 난이도와 오류 등을 검증한다. 독립된 위치의 선정위원들이 출제 문제의 오류를 잡아내기 때문에 ‘특혜 의혹’ 소지가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구조다.
채점 과정도 2단계에 걸친 채점위원 간의 교차검증이 이뤄져 세무사 2차시험과 같은 ‘채점 불공정’의 소지가 전혀 없다는 게 세무사회 관련 임원의 설명이다.
세무회계 1급 시험의 채점은 사전에 작성된 채점기준표에 의하며, 이중 삼중의 검증 단계를 거친다.
시험종료 직후 답안공개→이의신청 접수→최종답안 확정→초검과 재검 두 번 채점(3배수 위원 점수 합산해 평균)→채점소위원회 소집→채점의 적합성·오류 판정→최종 채점결과 확정→합격자 결정의 순으로 진행된다.
세무사회 임원은 “주관식인 세무회계 1급의 경우 전체 응시생의 수험번호와 성명을 삭제한 답안지를 3부씩 복사해 3명의 채점 위원에게 주고, 채점이 끝난 3명 위원의 점수를 합산해 평균을 낸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또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같은 문항에서 채점 위원 간 점수 편차가 7점 이상이 날 경우 채점소위원회를 열어 다시 채점을 하는 이중 장치를 작동하기 때문에 채점 불공정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산업인력공단에 세무사시험 관리 계속 맡겨도 되나
규정에 따른 투명하고 공정한 한국세무사회의 시험 관리와 비교해 부실 운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한국산업인력공단에 국가자격시험을 계속 맡겨도 되느냐는 의문이 수험생은 물론 관련 업계인 세무사 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국가 재정확보와 산업 발전을 위한 중요한 역할이 부여되는 세무사, 변리사, 기술사 등의 국가자격은 엄격한 기준을 통해 능력이 검증되어야 한다. 더구나 세무사, 변리사, 기술사 등 42개 국가자격시험은 대부분 주관식으로 출제되기 때문에 출제와 검토, 채점 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이 각별히 요구된다.
따라서 출제에 대한 검토위원도 없고 출제자가 채점을 하는 상식 이하의 시험관리을 하는 산업인력공단에 계속 국가자격시험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같은 여론과 맞물려 세무사업계 일각에서는 세무사시험의 주관기관을 세무사 단체인 한국세무사회로 이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서울 마포의 한 세무사는 “국가공인 자격인 세무회계 시험 등을 14년째 주관해 능력이 검증된 데다, 세무사시험 합격자로 구성된 단체인 만큼 전문성과 책임감도 있어 한국세무사회가 충분히 맡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격사 단체에서 해당 자격사의 선발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논의와 시도는 자격사단체에서 종종 거론됐다.
2019년 국회에서는 공인회계사 시험에서 이의신청이 많다는 이유로 금융감독원이 맡고 있는 회계사 시험을 산업인력공단이나 공인회계사회로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 당시 최중경 회계사회장은 “산업인력공단 이관은 반대한다”며 “판단은 정부가 내리겠지만 한공회가 맡을 수 있다”고 언론에 밝혔다. 공인회계사회는 1966년부터 1981년까지 공인회계사 시험 업무를 담당했다.
한국세무사회에서도 세무사 선발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회장 선거에서 주요 이슈가 된 적이 있다.
2017년 세무사회장 선거에서 당시 백운찬 회장은 불합리한 세무사제도를 개선한다며 “세무사시험 주관을 한국세무사회로 이관하고 선발 인원을 축소하겠다”고 공약으로 제시해 시선을 끌었다.
한국세무사회가 주관하는 국가공인 세무회계1급 자격시험의 채점 과정 흐름도
출처 : 日刊 NTN(일간NTN) (http://www.in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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